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58

642 프로젝트-20 020 최근에 할 말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설명하라. 혹시 대화를 이끄는 게 힘들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단지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인가? 대략 열흘 전에 있었던 일이다. 친구와의 다툼이 있었다. 계기는 사소했다. 작은 실수를 저질렀고 그게 친구에게 은근한 상처가 됐다. 저녁 늦은 시간, 나는 불려 나갔고 친구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 친구는 서로의 불만을 얘기하자 했다. 그리고 그 날 있었던 일을 나에게 털어놓았다. 나 또한 털어놓았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털어 놓은 감정들이 우리를 격하게 만든 것이었다. 쌓인 것을 푸는 자리는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는 자리가 되었고, 개선의 의지는 비난하고픈 마음으로 바뀌어 마음 속 가득 차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갈등이.. 2020. 4. 13.
642 프로젝트-19 019 1932년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짧은 이야기를 써보라. 단, 이야기 속에서 찻잔 하나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이젠 돌이킬 수가 없군.” 체가 찻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상황이 그렇게 암울한가요? 아직 선거 결과가 나오진 않았을 텐데요.” 내가 체에게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부정선거가 이루어졌습니다. 결과는 이미 나온 것이나 다름없죠.” 나는 아무 말할 수가 없었다. 벌써부터 심장을 누가 움켜쥐는 것처럼 뒤틀리는 것처럼 느껴져 이 상황이, 이 공기가 매우 불편했다. 체는 남아있는 차를 털어내고는, 찻잔을 내게 돌려주었다. “잘 마셨어요, 주인장. 부디 몸조심하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도요.” 체는 서글픈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문을.. 2020. 4. 8.
642 프로젝트-18 018 어린 시절 동네에 있었던 나무들의 이름을 지어라. 어린 시절이라고 하면 얼마만큼의 과거로 돌아가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기억에 남는 나무가 하나 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정문에 들어서면 보이는 그 나무. 언제나 전교생을 반겨주던 그 나무가 기억에 남는다. 그 나무와 특별한 것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학교를 갈 때마다 나를 반겨주었고, 사람 많은 등굣길을 걷다가 ‘언제 도착하지’라고 생각할 때 그러한 생각을 멈추게 하는 이정표였으며, 더운 여름 길에 공을 차러 가는 길이나 쉴 때 휴식처가 되어준 것뿐이었다. 그 나무에게 말을 걸어본다거나 영화 서처럼 손을 대고 마치 마음이 이어진 것처럼 의사소통을 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이정표나 쉼터 그 뿐이었다. 그런데도 기억에 남는 것은 특이하기도 했고 .. 2020. 4. 7.
642 프로젝트-17 017 폭풍으로 삼촌의 헛간이 부서지고 여섯 살 난 조카가 목숨을 잃었다. 폭풍이 휩쓸기 전 하늘의 색깔을 묘사하라. 어쩌다가 한 번씩 어떤 예감이 오는 때가 있다. 평소와 같은 벨소리인데도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좋지 못한 벨소리라거나 심장을 무겁게 때리는 진동 소리가 울릴 때면, 우리는 무언가 직감을 한다. 내가 그런 직감을 느낀 것도 아버지의 연락을 받고 나서였다. 오랜만에 찾아간 삼촌의 집은 무너져 있었다. 집도, 헛간도, 마당도 모두 다 폭풍으로 휩쓸린 상태였다. 삼촌은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우리보다 먼저 와 있던 구조대원은 무너진 집을 조심스럽게 정리하고 있었다. 삼촌의 자식이자 내 조카가 마지막으로 확인되어 있던 위치가 집안이었으므로. 하지만 부서진 잔해를 꺼낼수록 커지는 불안감은 그 누구.. 2020. 4. 6.
642 프로젝트-16 016 작동법을 전혀 모를 것 같은 미래의 전자기기 “드디어 됐다!” 나는 타임머신을 완성했다. 천재라고 불렸던 나는 어렸을 적부터 이 시간을 이동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고 싶었고, 그렇게 오래지 않아 완성해낼 수 있었다. 이론은 완벽했다. 테스트만이 남았다. 하지만 실패할 것이라는 예감은 전혀 들지 않았다. 가볍게 10년 뒤 미래를 설정해볼까.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고 설정을 입력한 뒤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역시 이상은 없는 것으로 계산되었다. 이제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다. 보호복을 입은 뒤에 타임머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원격으로 작동시켰다. 주변에 빛이 점점 밝아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나는 눈을 뜰 수가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나조차도 그 빛과 하나가 되더니 몸이 뱅글뱅글 돌았다. 정신을 차려.. 2020. 4. 3.
642 프로젝트-15 015 정말 갖고 싶었는데 막상 가지고 나니 사용하지 않는 물건 나는 시계를 좋아한다. 멋도 멋이지만, 시계에는 무언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건 아마 ‘시간’을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게 하는 도구여서 그런 것이 아닐까. 브랜드는 잘 알고 있지 않는다. 수중에 돈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시계나 사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을 리스트를 뽑아내며 신중에 신중을 가했다. 두 개의 후보가 남았을 때는 정말 수능 때의 답을 고르는 것보다 더 고심했다. 마침내 선택했다. 화려한 도금이 되어있는 것이라거나 번쩍거리는 시침들을 갖고 있는 것, 혹은 기능이 유난히 많은 것들을 제외하고 선택한 것은 누가 봐도 심심한 것이었다. 흰색 판에 시침, 분침, 초침이 모두 은색인. 심지어 시계.. 2020.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