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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심리학 공부

감각박탈

by 파블러 2019. 10. 22.

만약 여러분의 시각이나 청각, 후각, 촉각 혹은 미각이 일시적으로 마비된다면 어떨 것 같나요?
어쩌면, 아주 어쩌면 여러분 중 어떤 분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시끄럽고 보기 안 좋은 것만 가득한 세상, 잠시동안 인식할 수 없다면 고마운거지“ 라고요.
그렇다면 그것이 반나절이나 하루 혹은 이틀 정도로 시간이 길어진다면 어떨까요? 여전히 그대로 생각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이런 경험을 한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는 굉장히 겪기 어렵습니다. 특별한 장치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죠. 혹은 의도적으로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것 외에는 딱히 겪어볼 일이 없습니다.
제가 즐겨보는 웹툰 중 <덴마>라는 웹툰이 있습니다. 공상과학 웹툰인데, 그 중 한 에피소드에서 어느 한 인물이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는 상황이 나옵니다. 그는 이른바 ‘독방‘이라고 불리는 사설에 가둬지게 됩니다. 독방이 무엇인지 몰랐던 그는 들어가기 전까지는 어떤 형벌이든 감내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하죠.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버티지 못하고 삶을 포기하는 자세로 바뀌어버리게 됩니다.
꽤나 흥미로웠습니다. 그런데 상상이 잘 가질 않았죠. 정말로 모든 감각이 차단되면 미쳐버리는 걸까? 하고요. 저는 사실 여러분께 화두로 던졌던 질문에 “괜찮을 것 같다“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이런 생각을 가진 캐나다 심리학자 도널드 헵(Donald O. Hebb)은 건강한 성인 6명을 데리고 실험을 했다 합니다. 시각, 촉각, 청각을 통제시킨 후에 12시간, 하루, 이틀에 한번씩 간단한 테스트를 했습니다. 테스트는 평상시라면 누구나 쉽게 통과할 수 있을만한 것이었습니다.
고작 세 가지의 감각을 통제했을 뿐인 이 실험의 결과는 어땠을 것 같나요? 격리된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피실험자들은 시험을 치르기 굉장히 어려워했다고 합니다. 피실험자들은 주의력에 문제가 생기고 쉽게 흥분했으며, 지나치게 예민한 경향을 갖거나 생각이 더뎌지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심지어 착각을 하거나 환각을 보는 경우도 있었다 해요.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감각박탈의 법칙(sensory deprivation)’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의외로 감각박탈 현상은 쉽게 발견해낼 수 있다고 합니다. 장기간으로 운전을 하시는 기사분들을 예시로 들어보죠. 운전을 장기간 하다보면 쉽게 지루해진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겁니다. 그렇게 업무가 무미건조하고 오랜 시간동안 변화가 없게 되면 운전기사에게 미세한 감각박탈 현상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고요한 고층 아파트에서 계속 있다보면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 또한 그러한 현상 중 하나라는 것이죠.
이처럼 우리는 감각박탈 현상을 겪게되면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부정적인 정서를 쉽게 지니게 됩니다. 때문에 우리의 뇌는 이러한 것에 저항하게 되는데, 아까 언급한 착각이나 환각 또한 그러한 것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두운 방안에 있다보면 그 무엇도 보이지 않게되니 눈으로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집니다. 반면에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활동하려 하죠. 받아들이거나 신경을 돌릴만한 외적인 정보가 없으니 우리의 뇌는 내적인 정보를 생산해냅니다. 그리고 그것이 장기간 계속되면 뇌에서 만들어낸 정보를 보게되죠. 환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볼프강 메츠거(Wolfgang Metzger)는 이런 것을 ‘간츠벨트 효과(Ganzbelt Effect)’라고 이름을 지었다 합니다. 어쩌면 이런 현상은 우리 뇌의 일종의 방어 기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이 법칙이 무조건적으로 나쁘게 쓰이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100%로 감각박탈이 이루어지면 굉장히 위험하지만, 그보다 낮은 수치인 80%정도로 통제만 된다면 우울증이나 중독, 스트레스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이것은 ‘어느정도’로 ‘통제가능’한 ‘장치’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장치가 없는 한, 시도는 힘들 것 같습니다.
어떤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흉한 것을 보았을 때 눈으로 볼 수 있음에 기뻐하고, 좋지 않은 냄새를 맡았을 때 코로 냄새를 맡을 수 있음에 기뻐하라“ 라고요.
이제 세상에는 많은 것이 넘쳐납니다. 그만큼 어지럽고 시끄럽고 좋지 않은 것들로 가득하죠. 하지만 그런 것들을 미워하는 것보다 넘쳐난만큼 아름답고 기쁜 것들을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어찌됐건 감각에 기대 살아야하니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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