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 한 여인이 채용된 지 일주일 만에 해고당하는 장면을 글로 써보라. 참고로 지금 이 여자를 해고하려는 사람은 일주일 전만 해도 그녀의 채용에 아주 적극적이었다.
'회사에서 짐 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청천벽력이었다. 지은이 받은 갑작스러운 통보였다. 이게 뭐란 말인가. 지은은 고작 일주일 전에 채용된 신입 중에 신입이었다. 더군다나 채용 시에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던가. 이건 지은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보아도, 지나가는 최 삼배 할아버지가 보아도 납득할만한 그런 결과였었다. 하지만 일주일 만에 권고사직이라니. 지은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 팀장에게 물어보았다.
“갑자기 이렇게 해고라니요? 이렇게 말이 안 되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사장님의 지시였어요. 미안해요.”
하지만 팀장의 얼굴은 미안하다는 말과 다르게 어딘가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사람이 해고당했는데, 면전에서 저렇게 웃다니. 저게 사람인가? 안경 너머 반달 모양으로 웃고 있는 저 반달눈을 검지와 중지로 찌를까, 하는 생각이 들던 지은이었다. 하지만 가까스로 참고 지은은 일단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지은의 분은 도저히 풀리지 않았다. 힘겹게 들어온 회사였다. 급여도 좋았고 복지도 만족스러웠으며 무엇보다 사장도 지은과 나이 차가 많이 나지 않을 정도로 회사의 연령도 분위기도 굉장히 젊었다. 지은이 노릴 수 있는 직장 중에 최상이었고 때문에 최선을 다 했다.
실수를 했던가? 지은은 도저히 생각해낼 수 없었다. 험악한 생각을 가끔 했어도 이렇게 화가 날 때만 몇 번 했을 뿐이지, 자주 하지도 않는다. 더군다나 지은은 그런 것에서 인내심을 발휘하는데 굉장히 탁월했다. 이성을 유지하면, 선을 넘는 일은 절대 없었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런 인내심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지금껏 좋아 보이던 회사가 지금은 악마의 소굴처럼 보였다. 아까 팀장도 그렇고, 갑작스레 해고 지시를 내린 사장도 미웠으며, 옆자리에 있는 사수인 최 대리도 얄미웠다. 지은은 이제 짐을 쌀 생각보다 이 악마들이 득실거리는, 역겨운 이 장소에 어떻게 하면 엿을 먹일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렇게 짐을 싸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지은과 조금 떨어진 저 편에서 사장이 보였다. 젊고 신선한 에너지가 넘쳐 보였던 사장은 이제 가발 쓴 조기탈모가 온 민둥머리 아저씨에 불과해 보였다.사장은 그녀를 보고 얼른 자리를 피했지만, 끝내 그녀를 피할 수는 없었다.
“사장님, 도대체 왜 그런 지시를 내린 거죠?”
“할 말 없습니다. 더 이상 봐줄 수가 없어요. 이제 그만 돌아가 주시죠.”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습니까?”
지은은 자신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그걸 제 입으로 일일이 담아내기도 싫습니다. 얼른 짐 싸서 나가세요.”
사장은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구겼다. 미간에 힘을 주니 눈코입이 한 곳으로 몰렸다. 얼굴에 빈 면적이 더 넓어졌다고 생각한 지은이었다.
지은도 화가 나서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저 치우던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저히 화를 참을 수 없어서 괜히 물건에다 분풀이를 하고 있었다.
‘복수한다, 꼭 복수한다.’
“지은 씨?”
옆에 있던 최 대리가 말을 걸었다. 지은은 최 대리를 보았다. 최 대리는 잠깐 주변 눈치를 보았다. 모두들 이쪽을 바라보지는 않았지만,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최 대리는 하는 수 없이 조용히 지은을 자리에 앉아보라고 권유했다.
‘제가 왜 그쪽 말을 들어야 하죠?’라는 말이 목젖을 치고 입 안으로 올라왔다. 때마침 닫혀 있던 치아가 방파제 역할을 해주었다. 지은은 욕지거리가 나오는 것을 힘겹게 참아내며 최대리의 말을 들었다.
“보아하니 납득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대리님이라면 이 상황이 납득 가겠어요? 일주일만에 잘렸는데?”
참지 못하고 터진 말이었다.
“저는 아무런 실수를 하지 않았고,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나가라고 한다면 대리님은 그냥 나갈 수 있나요?”
지은은 속사포처럼 말했다. 하지만 이상함을 느꼈다. 아까 팀장에게서 느꼈던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최 대리는, 저 놈 자식이 온 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고 눈을 못 마주치는 게 아닌가! 이런 때면, 적어도 자신의 부사수가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맞나? 자신이 살아왔던 세계가 너희들의 세계랑 다른가? 적어도 동정을 표하거나 하다못해 이렇게 따박따박 밀어붙이면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어야 하는 거 아니야? 너희들은 도대체 어떤 세상을 살아온 거야?
최 대리는 지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 겨우 진정이 된 최 대리는 입을 열었다.
“회식 날 기억 안 나요?”
최 대리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 밖이었다. 회식? 지은은 머리를 굴려보았다. 회식하러 간 것까지는 기억해낼 수 있었다. 어느 순간까지는 기억해낼 수 있었지만, 그 후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 다음 씬이 있어야 하는데, 통편집이 된 것 같았다.
“역시 기억이 나질 않나 보네.” 지은의 표정을 살펴보던 최 대리가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이제 주종은 뒤집혔다.
회.식.
고작 두 음절의 단어 때문에.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요. 2차로 주꾸미 집에 갔는데 지은 씨가 어딘가 모르게 주꾸미가 사장님을 닮았다고 한 일부터 할까요, 아니면 핑거캡을 씌운 엄지를 들쳐 보이며 맨들맨들한 것이 사장님을 닮았다고 한 것부터 말해야 할까요? 그것도 아니면 직접 보고 싶다며 사장님의 가발을 뜯어낸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잘 모르겠어요. 그게 아니라면 겨우 웃어넘겼던 사장님이 지은 씨의 한 시간 설교를 듣고 화룡정점으로 ‘공짜 좀 그만 좋아해, 그러니 대머리지.’라고 했던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지은은 빠르고 정확하게, 군말없이 짐을 쌓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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