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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 프로젝트

642 프로젝트-9

by 파블러 2020. 3. 21.

 009 내가 도둑맞은 물건

수능 교실, 왠지 아련하다

 첫 번째 수능에서 미끄러지고 두 번째 수능을 준비했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가장 쉬운 공부를 가장 열심히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당일 날이 되었지.

 수능 때 평소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이미지 트레이닝도 하고 펜도 쓰던 것만 썼으며, 해당 과목 시험 시간에는 그 과목만 공부를 했다.

 그리고 그것은 꽤나 효과가 있었지.

 오전의 두 과목, 국어 영역과 수학 영역에서는 나도 놀랄 정도로 술술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중에 가채점한 후에야 알았지만 주관식 답도 한 가지 찍은 것이 있었는데 맞췄었지. 푼 것은 틀렸지만.

 그 기세는 쭈욱 나아갈 줄 알았어. 그런 줄 알았지. 여기서 내가 뭘 말할지 알지?

 수능을 준비할 때 나는 평소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는데, 그것들 중에 하나가 밥이었어. 평소 쌀밥과 여러 반찬들을 점심으로 먹었었지. 근데 막상 수능 당일에 소화가 잘 되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준비한 것이 죽이었지. 그게 내 패착이었어.

 점심 시간을 보내고 시험을 준비하는 데 뭔가 이상하더라고. 아무리 뒤져봐도 내가 자주 쓰던 펜이 없어. 샤프를 주로 썼었는데 그게 도저히 보이지 않는 거야.나는 하는 수 없이 고사장에서 나누어 준 샤프를 써야 했지.지금 보면 별 것 아닌데, 그 때는 왜 그렇게 큰 일인 것 같았는지.

 물론 내가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어. 아니, 사실 잃어버린 거겠지. 나는 엄청 덤벙댔기 때문에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사람이거든.

 하지만 당시에는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나를 시기하는 어떤 누군가가 내가 원활하게 시험 보지 못하게 훔쳐간 것이라고 믿었지. 내 플랜에 펜이 없어지는 생각을 하지 않았거든. 그런 사소한 것까지 계획하는 사람이 있으면 천재이거나 정신병자이거나 라는 게 당시 내 생각이었어. 내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아까 죽을 먹었다고 했지? 난 죽이 그렇게 소화가 빨리 되는 것인지 몰랐어. 아니면 내가 남들보다 소화를 빨리 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는지도. 죽 한 통을 다 먹었는데, 한 시간만에 소화되는 것은 놀랍고 당황스러웠다니까? 영어 지문을 푸는데 배가 고프니까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고.

 두 번째 수능이 끝났을 때는 저녁이 될 때 즈음이었어. 저 산 너머에서 노을이 붉게 가라앉고 있었지. 내 마음이 가라앉는 것처럼. 사람들이 수능이 끝나고 나면 굉장히 허무했다고 하는데, 난 그걸 두 번째 수능에서야 느꼈어.

 오후에 시험을 본 두 과목, 영어와 과학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어. 하지만 앞서 본 두 과목을 워낙 잘 보았기에 결과적으로 재수에 성공했지.

 지금 보면 없어진 펜을 도둑맞았다고 생각하는 내가 한편으로는 한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해. 그것이 진짜였다고 해도 이젠 원망하지는 않을 것 같아.

 근데 정말 있다면, 샤프심이 손가락에 박혔으면 좋겠다. 볼펜 터져서 잉크가 손에 가득 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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