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인질의 몸값을 요구하는 편지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라.
‘너희 가족의 딸 세나는 우리가 데리고 있다. 세나를 구하고 싶으면 10억을 준비해라. XXX-YYYY-ZZZZ. 이곳으로 연락해라. 경찰이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시, 세나의 목숨은 없다.’
납치범은 세나의 가족을 협박하는 편지를 그렇게 썼다. 그리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그 집의 우편함에 직접 편지를 넣으러 갔다. 그는 집의 위치는 알고 있었기에 편지만 넣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다. 언제부턴가 세나의 아파트 공동현관에 출입이 비밀번호로 통제되는 문이 생긴 것이다. 세나의 외출 후 동선만 파악한 것이 실수였다. 들어가는 방법을 세나에게 물어보면 되었지만 그녀가 쉽게 가르쳐줄 것 같지도 않았다. 또 귀찮았으며, 무엇보다 이렇게 검은 색으로 덕지덕지 무장한 사람이 왔다 갔다 하면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는 그래서 그 아파트 주민 누군가가 들어가기를 혹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몇 분을 기다렸을까, 다행히 오래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문이 열렸을 때, 그는 동시에 그 아파트 주민과 현관을 들어갔다. 그리고는 세나 집의 호수를 찾아 편지를 집어넣고는 바로 빠져나왔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린담. 납치범은 생각했다.
“이제 기다리기만 연락 오겠지.” 그가 중얼거렸다.
“그렇게 기다려봤자 연락 안 와요.” 세나가 말했다.
이틀째 연락을 기다린 납치범을 보며 세나는 답답해했다. 세나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보시다시피 이 납치범은 은근히 허술하다. 도망가지 못하게 그녀를 묶어놓은 것도, 자신의 습관이나 동선을 잘 안다는 것이나 그녀 현재 자신의 위치가 어딘지 파악 못하게 감춘 것도 보면 꽤나 정성 들여 자신을 납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첫날 울고불고 잘못했다고 소리치며 용서를 빌었을 때, 의외로 납치범은 그녀의 눈가리개를 풀어주었다. 또 그녀가 배고프다고 하자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밥을 충분히 주었으며, 더군다나 대화도 꽤나 많이 했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납치범보다는 그냥 동네 이웃 아저씨 같았다. 그렇다고 진짜 이웃은 아니고 생판 모르는 아저씨였지만. 납치범이 그녀에게 공동현관에 있었던 일을 했을 때는 멍청하다 못해 한심하게 느껴졌다.
두번째 이유는 자신에게 어떤 위해도, 심지어 화도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가 아는 납치범이라는 것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적어도 그녀가 상상한 선에서의 납치범은 이렇지 않았다. 그녀에게 소리를 지른다거나, 폭력을 가한다거나, 혹은 신체적으로 위협이 되는 협박을 하는 게 납치범의 이미지 아닌가? 아니면 인질은 탈없이 무사해야 하니 건들지 않는 건가?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왜 연락이 없는 거지?” 납치범이 말했다.
“말했잖아요. 전 그날 집에서 나오기 전에 부모님이랑 대판 싸우고 나왔다고.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 아마 며칠간은 절 찾지도 않을 거예요. 더군다나 그 편지도 문제예요. 편지를 요즘 누가 봐요? 아마 그것도 그대로 우편함에 있을 걸요?”
그 말을 들은 납치범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렴 부모가 그 정도 걱정은 하지 않을까. 납치범은 정말인가 싶어 그 집 공동현관으로 갔다. 젠장, 세나에게 공동현관에 들어가는 방법을 묻는다는 걸 잊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누군가가 나왔다. 그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입주민인 척 들어갔다. 세나 말대로 편지는 그대로 있었다. 요즘 부모들은 자식을 예전처럼 걱정하지는 않는군. 그는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는 버릇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 무언가 생각난 듯 손뼉을 치며, “이메일을 보낼까?”
“이메일 주소는 아세요?”
“너 몰라?”
“네.”
하아, 납치범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핸드폰이 보였다. 연락을 받으려고 만든 대포폰이었다. 그는 흥분해서 소리쳤다.
“메시지를 보내면 되겠네!”
이번에는 되려 세나가 한숨을 쉬었다. “아저씨.”
“응.”
“아저씨가 저번에 말했잖아요. 발신할 일이 없을 것 같아서 수신용으로만 뚫어놓았다고.”
그는 세나에게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아… 그랬지” 라고 말했다. 요즘 애들은 굉장히 차분하군. 납치범은 생각했다. 무언가 뾰족한 수가 없을까.
“편지를 직접 갖다 주는 것은 어때요?”
세나가 말했다. 납치범은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별다른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친절할 필요가 있나?”
“하지만 이러면 언제까지고 연락 없이 기다려야 할 텐데. 이제 아저씨도 얼른 승부를 보고 싶지 않아요?”
그건 그랬다. 납치범은 얼른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딸이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아도 찾지 않는 부모나 자신을 납치한 납치범의 얘기를 들어주고 이런저런 충고를 하는 이 상황이 매우 이상했다. 무엇보다 그는 이 상황을 각오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불편했다. 그는 결국 세나의 말대로 하기를 결심했다.
“아저씨 근데, 저 조금 움직이게 줄 좀 살짝만이라도 느슨하게 해줄 수 있을까요? 몸이 저려요.”
납치범은 이 상황이 역시 굉장히 이상하다고 다시 한번 느꼈다.
납치범은 그녀의 아파트 앞 공동현관에 세 번째 도착했다. 세 번쯤 되니 이제는 굉장히 익숙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도록 그녀에게 공동현관을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흔쾌히 알려주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조건을 내걸었다. 행여나 다른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말 것. 그는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다며 안심시켰다. 실제로도 그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세나는 공동현관을 들어가기 위해 입력해야하는 키패드 순서를 알려주었다. 몇 번이고 틀려서 꾸지람을 듣고 나서야 그는 제대로 종이에 적어놓을 수 있었다. 그는 공동현관 앞에 섰다. 그리고 종이를 보며 키패드를 누르기 시작했다. 눈이 침침해서 그런지 아니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하나하나 종이에 적힌 것을 봐 가면서 입력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렸다. 겨우겨우 다 입력하고 나니 뒤에 사람들이 줄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를 굉장히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는 푹 눌러쓴 모자를 더 깊게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타지 않았다. CCTV에는 찍히고 싶지 않았다. 계단으로 걸어가야만 했다. 하지만 문제는 세나의 집이 이 아파트 꼭대기인 33층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하는 수 없이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올라갔다. 겨우 다 올라갔을 때 그의 심장을 터질 것 같았다.
그는 세나의 집 앞에서 편지를 꺼내 들었다. 그가 올라오면서 꽉 잡고 있었던 탓인지 편지는 굉장히 꼬깃꼬깃하고 땀에 절어있었다. 그는 그 꼬깃꼬깃한 편지를 어떤 식으로 넣어야 할까 고민했다. 현관 문 밑에 밀어 넣을까, 우유 주머니 안에 넣을까. 아니면 편지를 앞에 놓은 뒤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칠까. 그는 그런 고민을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그는 이런 상황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계획이 없었다.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납치는 너무 피곤해.”
그는 땀에 절어버린 모자와 검은 외투를 벗었다. 젖어있는 머리와 티셔츠가 바깥공기를 만나니 시원했다. 살짝 으스스할 정도로 상쾌했다. 그는 엘리베이터 내림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그것이 여기 꼭대기까지 올라오기를 기다리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세나의 어머니였다.
“안녕하세요.” 세나의 어머니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납치범도 말했다.
그는 그녀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세나는 납치범에게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다. 그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냥 그녀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차를 태워 그녀의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이번에는 눈가리개도 헷갈리게 빙빙 돌지도 않고 바로 그녀의 집으로 갔다. 그녀가 내리는 것을 확인하며 납치범은, “미안하다” 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 길로 바로 경찰서로 갔다. 그리고 이제껏 있었던 일을 경찰에게 말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경찰은 납치한 증거가 있냐고 물었다. 납치한 장소라도 데려가야 하나, 그는 생각했다. 때마침 한 신고가 들어왔다는 동료 경찰관이 말했다. 그 동료 경찰은 그 내용을 설명했는데, 굉장히 괴이하다며 납치된 본인이 납치된 사실을 신고했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들은 경찰은 남자를 쳐다보았다.
모든 사실을 자백한 납치범은 후송되었다. 어이없게 한 건을 해결한 경찰은 동료 경찰과 커피를 뽑아 마시며 그 납치범의 이야기를 말했다. 동료 또한 어이없기도 하고 어찌 보면 우스운 이 이야기의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요즘 납치범 치고는 굉장히 착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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