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우가 있었다. 그는 배가 매우 고팠다.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돌아다니던 중, 울타리 너머에 포도밭이 있는 것을 보았다. 어찌저찌 울타리를 넘은 여우는 포도밭 밑에 서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우가 포도를 따기엔, 포도는 너무 높은 곳에 있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여우는 포도를 손이 넣을 수 없었다. 이윽고 여우는 돌아서며 이렇게 말했다.
“흥, 분명 저 포도는 덜 익어서 맛이 실거야.”
여우는 포도를 등지고 돌아섰다.
<여우와 포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여우와 포도>는 굉장히 유명한 이야기로, <이솝우화>의 잘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이 고전에서 우리는 ‘자기합리화’가 어리석으면서 추해보이는 행위임을 알 수 있죠. 미국에서는 이 이야기 때문인지, ‘sour grapes’라는 단어가 ‘오기’라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합니다.
자기합리화는 원하는 상황이 되지 않자, 그것의 단점만을 집중하며 되려 얻지 못한 이 상황을 만족하는 것을 말합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받아치기 때문에 문제의 근본을 바라보지 못하게 되고 연이어 자신의 결점에도 눈을 감게됩니다. 발전을 꾀하는데 있어 상당히 좋지 못한 태도입니다.
사실 자기합리화는 저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입니다. 크게 뭉뜨그려 말해보자면, 저는 무슨 문제가 저에게 생기게 되면, 그 책임이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장 먼저 하게됩니다. 제 자신은 언제나 옳게 행동했기 때문에 저한테서 문제가 발생할 일이 아예 없다는 전제를 항상 가지고 있어요. 문제의 원인이 저한테 있는 경우도 있는데도 말이죠. 그런 경우 자주 쓰이는 것이 자기합리화입니다. 물론 나중에 이성이 회복됐을 때면 제 잘못을 뉘우치곤 합니다만, 그것이 가장 먼저 오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런 것만 봐도 제 자신의 결점에 얼마나 관대하고, 주관적이라는 말이 이 이상 어울릴 수가 없죠.
그렇다면 자기합리화는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책에서는 조금 다른 관점을 취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어떤 좋지 않은 일을 겪었다고 합시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그 대부분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저 손가락이나 빨면서 자기혐오에 빠져야할까요?
옛날이었다면 “그것이 무조건 옳다!”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당한 자기합리화는 심리적으로 안정시키는 데에 큰 기여를 합니다. 자기합리화를 함으로써 실수의 부담을 조금 덜어내는거죠. 자신이 스스로를 위로한다는 것은 좋아보이는 이미지는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이미지의 위로를 받는 방법은 타인이 위로해준다는 것인데, 자위는 본인이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에요. 동정을 해주는 대상이 겨우 타인에서 본인에 바뀐 것이 불과합니다.
독도 알맞게 쓰인다면 약이 되곤 한다합니다. 저는 자기합리화가 무조건적으로 좋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나쁘지만도 않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자기반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절한 상황에서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요?
“흥, 분명 저 포도는 덜 익어서 맛이 실거야.”
여우는 포도를 등지고 돌아섰다.
<여우와 포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여우와 포도>는 굉장히 유명한 이야기로, <이솝우화>의 잘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이 고전에서 우리는 ‘자기합리화’가 어리석으면서 추해보이는 행위임을 알 수 있죠. 미국에서는 이 이야기 때문인지, ‘sour grapes’라는 단어가 ‘오기’라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합니다.
자기합리화는 원하는 상황이 되지 않자, 그것의 단점만을 집중하며 되려 얻지 못한 이 상황을 만족하는 것을 말합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받아치기 때문에 문제의 근본을 바라보지 못하게 되고 연이어 자신의 결점에도 눈을 감게됩니다. 발전을 꾀하는데 있어 상당히 좋지 못한 태도입니다.
사실 자기합리화는 저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입니다. 크게 뭉뜨그려 말해보자면, 저는 무슨 문제가 저에게 생기게 되면, 그 책임이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장 먼저 하게됩니다. 제 자신은 언제나 옳게 행동했기 때문에 저한테서 문제가 발생할 일이 아예 없다는 전제를 항상 가지고 있어요. 문제의 원인이 저한테 있는 경우도 있는데도 말이죠. 그런 경우 자주 쓰이는 것이 자기합리화입니다. 물론 나중에 이성이 회복됐을 때면 제 잘못을 뉘우치곤 합니다만, 그것이 가장 먼저 오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런 것만 봐도 제 자신의 결점에 얼마나 관대하고, 주관적이라는 말이 이 이상 어울릴 수가 없죠.
그렇다면 자기합리화는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책에서는 조금 다른 관점을 취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어떤 좋지 않은 일을 겪었다고 합시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그 대부분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저 손가락이나 빨면서 자기혐오에 빠져야할까요?
옛날이었다면 “그것이 무조건 옳다!”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당한 자기합리화는 심리적으로 안정시키는 데에 큰 기여를 합니다. 자기합리화를 함으로써 실수의 부담을 조금 덜어내는거죠. 자신이 스스로를 위로한다는 것은 좋아보이는 이미지는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이미지의 위로를 받는 방법은 타인이 위로해준다는 것인데, 자위는 본인이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에요. 동정을 해주는 대상이 겨우 타인에서 본인에 바뀐 것이 불과합니다.
독도 알맞게 쓰인다면 약이 되곤 한다합니다. 저는 자기합리화가 무조건적으로 좋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나쁘지만도 않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자기반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절한 상황에서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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