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의 문인 정판교는 말했다.
“영리함에도 크고 작음의 구분이 있고, 멍청함에도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있는데 작은 영리함과 큰 멍청함은 진짜 멍청함에 가짜 지혜다. 반면 큰 영리함에 작은 멍청함은 가짜 멍청함에 진짜 지혜다. 멍청한 척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이는 큰 지혜가 어려운 멍청함 속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말합니다.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이 곧 무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되려 현명한 처세를 위해서는 멍청한 척, 모르는 척을 할줄 알아야 한다고도 합니다. 이러한 처세는 우리가 아주 어색한 얘기도 아닙니다.
<삼국지연의>의 계륵의 일화가 그렇습니다. 계륵의 일화는 잘 아시죠? 먹자니 헛배만 부를 것 같고 버리자니 아쉬운. 조조의 모사, 양수는 누구보다 잘났지만 그 모르는 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조조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실화와 <삼국지연의>는 조금 다르지만 양수가 잘난 인물이었고 모르는 척을 할 수 없는 인물은 다르지 않다고 하네요.
다른 예로는 흥선대원군이 있습니다. 그는 어릴 적에 주변 세력들에 의해 많이 노려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어리석은 척을 하죠. 오죽하면 ‘상갓집 개‘라고 불리울 정도였겠습니까? 그는 기회가 올 때까지 누구에게도 눈에 띄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중엔 어떻게 되었죠? 아시다시피, 조선을 뒤흔드는 막강한 인물로 거듭나죠. 당시만 해도 흥선대원군이 그럴 사람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처럼 모르는 척을 한다는 것은 의외로 많은 것을 선물해줍니다. 어떤 일의 진상을 모를 때가 그렇습니다. 그것에 대해 알고싶은데 자칫하면 독박을 쓸 것 같아 두려울 때는 모르는 척이 답을 줄 수도 있습니다.
어리석은 척을 하기. 혹은 모르는 척 하기. 확실히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보다 뛰어난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걸로 쓴맛을 본 사람들도 많았죠. 그것만으로도 사람의 입이 얼마나 다물기 어려운지를 말해줍니다. 요컨대 ‘모르는 척하기’의 또 다른 이름은 겸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날의 사람들에게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약점을 보여주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그것이 진짜인지 겸손인지 알려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아요. 그래서 아는 것이 나오면 얼른 지식을 드러내려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잠시 자신의 재능을 뽐낸 결과는 허무합니다. 빛이 나보이는 대신에 모두의 표적이 될뿐만 아니라 엄청난 심리적 부담도 가지게 돼죠.
저는 실제로 아는 것이 적습니다. 또 멍청한 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멍청하죠. 20년하고도 그 이상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살면서도 불편한 적은 없었습니다. 멍청하다고 무시하는 사람들은 있었습니다만 이젠 그 사람들은 제 인생에서 존재하질 않아요.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잘 살고 있으면 배라도 아플텐데 그런 소식은 들어보지를 못했네요. 그들이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이 되지도 않고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포스팅 마무리 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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